아버지의 이름을 벗어나는 일: Guillaume Lafon of Dominique Lafon
부르고뉴에서 이런 공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곳은 여러 생산자가 같은 양조 시설을 공유하는 커스텀 크러시(Custom crush) 양조장이다.

신대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 각자의 포도를 갖고 와서, 공유된 시설에서 각자의 와인을 만드는 것. 그것이 부르고뉴에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이곳에서는 8명의 생산자가 함께하며 그 중 도미니끄 라퐁(Dominique Lafon)이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였다.

커스텀 크러시(Custom Crush)는 사실 유럽의 네고시앙 모델에서 기원한다. 포도나 와인을 구매해 자신의 이름으로 출시하는 유럽의 전통적 관행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현대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1970년대부터 퍼지기 시작해 지금은 나파, 소노마에서 흔한 모델이 됐다. 파흘마이어(Pahlmeyer), 브라이언트 패밀리 (Bryant Family) 같은 지금은 나파의 전설이 된 와이너리들도 커스텀 크러시 시설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부르고뉴에서는 이 모델이 흔치 않다. 부르고뉴는 도멘 문화다. 밭을 소유하고, 가족 셀러에서 양조하고, 대대로 전수하는 것이 전통이다. 여러 생산자가 한 시설을 공유하는 방식은 최근들어 나타다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이례적인 경우이다.
(디플로마 교과서의 따분한 챕터에서 겨우 꾸겨 넣은 용어였는데, 이걸 여기서 만난다고? 껄껄)
도미니끄 라퐁이 이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기욤이 바로 그 공간에서 자신의 첫 빈티지를 만들었다는 것 - 전통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시작한 것이 오히려 자유를 만들어 준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도미니끄 라퐁 (아래 라벨)은 연간 3만 병 생산되며. 5헥타르의 땅을 소유하고 있고, 일부 포도는 사온다고 한다.
잠깐만 라퐁 가문 도멘 교통정리 좀 하겠다.
Domaine des Comtes Lafon — 1869년 보슈(Boch) 가문이 뫼르소에 셀러를 지으면서 시작. 쥘 라퐁이 1894년 마리 보슈와 결혼하면서 라퐁 가문의 이름이 붙었다. 1919년 르 몽라쉐 0.32헥타르 취득. 도미니크 라퐁이 1985년 인수 후 1987년부터 소작 포도밭 회수 시작, 1992년 제초제 중단, 1995년 유기농 전환, 1998년 바이오다이나믹 전환. 2021년 은퇴, 딸 레아(Léa)와 조카 삐에르(Pierre)에게 계승.
Les Héritiers du Comte Lafon — 1999년 마코네 밀리 라마르틴에 매입한 도멘. 레아와 삐에르 운영.
Dominique Lafon (개인 레이블) — 2008년 꼼뜨 라퐁과 완전히 별도로 시작. 뫼르소, 퓔리니 몽라쉐, 볼네, 본 등 약 5헥타르. 샤또 드 블리니에서 양조. 2022년부터 아들 기욤이 운영. 2024 빈티지부터 기욤 라퐁 이름으로 릴리즈 예정.

도미니크 라퐁이 개인 레이블을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꼼뜨 라퐁의 지분 관계가 매우 복잡했다. 대대로 이어지면서 가문 안에 지분이 나뉘고 얽혔다.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구성된 도멘에서, 자신의 개성을 더 펼치고 싶었다. 그래서 꼼뜨 라퐁 셀러가 아닌,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도멘을 물려받은 것이 기욤이다.

기욤 라퐁은 철학·과학을 공부했다. 와인수저*로 태어났지만 처음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이후 CFPPA(농업전문학교)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를 공부하고 2022년 도멘에 합류했다.
첫해인 2022년은 아버지와 누나가 함께 있었다. 하라는 대로 했다. 아버지의 방식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2023년부터 본인의 색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기욤 라퐁이 만든 첫 번째 빈티지가 탄생했다.
*어머니는 후미에 집안 출신이다. 삼촌이 크리스토프 후미에라고 한다..(Christophe Roumier) 부르고뉴 명문의 피를 다 받은 기욤은 정말 와수저이다..
이날 테이스팅은 그 2024 빈티지의 병입 직전, 마지막으로 맛보는 자리였다. 기욤이 말했다.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빈티지라 더 의미 있는 테이스팅"이라고. 실제 바깥에 병입시설을 갖춘 대형 트럭이 와있었다.

테이스팅은 레드부터 시작됐다.

Volnay Les Luret(볼네 레 뤼헤) 2024 —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밭. 2024 빈티지는 굉장히 어려웠다. 수확량도 적었다. 하지만 퀄리티는 좋았다. 안정적인 타르타르산보다 말릭산(사과산)이 많아 젖산발효를 1년간 진행했다. 와인이 불안정해 숙성이 더 오래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Volnay 1er Cru Les Luret ( 볼네 프리미에 크뤼 레 뤼헤)2024 — 빌라주 밭보다 5미터 위에 위치한 다른 구획이었다. 경사가 있고 돌이 훨씬 많다. 미네랄. 말로락틱이 일찍 끝나 와인의 완성이 빨랐다. 떼루아의 아름다움을 담았으며, 장기숙성의 캐릭터.
레지오날 블랑은 지난해 12월에 병입이되어, 바틀에서 꺼내주었다.

Bourgogne Aligote 2024 — 과실향을 강조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만 사용했다. 이산화황 일체 무첨가. 높은 고도의 밭에서 10월에 수확(얼마나 서늘하냐구요 ㅎㅎ).
Bourgogne Blanc 2024 — 뫼르소 3분의 1, 퓔리니 3분의 2의 레지오날 밭 블렌드. 3만 병 중 1만 병을 차지함. 이와같이 생산하는 와인 중 상당한 비중을 부르고뉴 블랑이 차지 한다고 한다. 500L 오크통에 숙성. (뉴오크의 터치가 와인을 해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뫼르소 구역의 밭 비중이 작음에도 그 개성이 더 드러난다고 했다. 말로가 오래 진행되면서 리덕티브함. 기욤은 산화적인 것보다 이 방향을 선호한다고 했다.

Meursault Les Narvaux (뫼르소 레 나르보 ) 2024 — 특이한 밭이었다. 산에 둘러싸여 있고 서늘한 기후를 가지지만 남향이라 일조가 좋아 포도가 빨리 익는다고 한다. 이 밭의 상태를 보고 빈티지 전체를 가늠한다고 했다. 기욤에게 이 밭은 나침반이었다.
Corton Charlesmagne (꼬르똥 샤를마뉴) 2024 — 꼬르똥 루즈 밭에 가까운 위치, 라두아 쪽. 포도를 구매해서 만든다.
와인을 테이스팅하고, 꺄브로 넘어가는 길에 자신의 실제 라벨을 보여 주엇다.

기욤의 와인 라벨은 아르노 라쇼(Arnoux Lachaux)의 와이프 루이즈(Louise)가 디자인했다. 트라페(Trapet), 도멘 장 도비사(Jean Dauvissat), 테오 당세(Théo Dancer) 등 부르고뉴 여러 생산자들의 라벨을 작업해온 작가다. 인프라도 와수저 다운 그였다 ㅎㅎ
https://www.instagram.com/delouavous?igsh=MW15Y3N4bWJwbnlvNg==
까브로 자리를 옮겼다.

2025빈티지 와인들이 숙성중이었는데 2025년도 마찬가지로 작황은 좋지 못했고, 뫼르소 나르보 2025를 오크배럴에서 바로 테이스팅시켜주었다. 남으면 오크에 다시 넣어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모두 뱃속에 집어넣어 버렸다..ㅎㅎㅎ
그렇게 한시간 여, 우릴 위해 시간을 내어준 기욤에게 도장을 선물하고는 헤어졌다.

꼼뜨 라퐁이라는 헤리티지를 받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의 형태가 젊은이의 꿈을 펼치기에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방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 생각이 계속 남았다. 꼼뜨 라퐁은 세계 최고의 도멘이다. 그 이름을 물려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영광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너무 크면,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기욤은 그 이름 바깥에서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달고, 아버지의 밭으로, 그러나 자신의 방식으로.

기욤의 라벨에는 "다윈(Darwin)"이라는 꽃이 담겼다.

봄의 전조처럼.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다.
도미니크 라퐁이 개인 레이블을 만들 때 꼼뜨 라퐁 셀러를 쓰지 않고 블리니로 온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두 레이블을 완전히 분리하고 싶었다."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철학도, 실험도, 정체성도 분리하는 것.
기욤이 지금 그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었다.
2022년 도멘에 조인하고 서는 2024년부터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서기로 한 그였다.
참으로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비니 레 본의 휴고비즈에 이어,
새로운 시작을 또 보았다.
20년 뒤, 기욤 라퐁이
아버지의 이름에서 멀리 달아나 있기를,
온전히 그만의 이름으로 통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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